
2025년 들어 한·미 통상 관계에 새로운 긴장이 형성되고 있습니다. 미국이 한국 정부에 자국산 대두(콩) 수입 확대 및 관세 인하를 요청하면서, 농산물 시장을 둘러싼 협상 압박이 커지고 있습니다. 반면 한국은 “검토 계획이 없다”며 신중한 태도를 보이고 있어, 양국 간 미묘한 신경전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이번 글에서는 미국의 요구 배경, 한국 정부의 입장, 그리고 향후 통상 협상의 전망을 심층 분석합니다.
미국의 대두 수출 압박, 왜 한국을 겨냥했나
2025년 미국 정부가 한국에 ‘대두(soybean)’ 수입 확대를 공식 요청한 배경에는 자국 농업 경기 악화와 수출 부진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미국 중서부 지역은 2024년 이상기후로 인해 대두 생산량이 급감했고, 브라질과 아르헨티나의 생산 회복으로 세계 시장 점유율이 떨어졌습니다. 특히 2025년 들어 중국이 미국산 대두 대신 남미산 수입을 늘리면서, 미국 농무부(USDA)는 한국·일본·대만 등 동아시아 시장을 새로운 주요 수출 대상으로 삼고 있습니다.
실제 미국 상무부 자료에 따르면, 2024년 미국의 대두 수출량은 전년 대비 13% 감소했습니다. 이에 따라 미국은 “동맹국이 미국 농산물 구매를 통해 시장 안정화에 기여해야 한다”는 논리를 내세우며, 한국에 ‘협조 요청’을 한 상태입니다.
미국의 이런 움직임은 단순한 농산물 거래 요청이 아니라, 한·미 통상 외교의 연장선으로 해석됩니다. 바이든 행정부는 인플레이션 감축법(IRA) 이후 동맹국과의 공급망 협력을 강조하는 동시에, 자국 농가를 보호하기 위한 새로운 형태의 ‘경제 안보 동맹’을 추진 중입니다. 즉, 대두 수입 요구는 ‘농산물판 IRA’ 성격의 압박 카드라는 분석이 나옵니다.
또한 대두는 바이오연료, 사료, 식품 원료 등 다양한 산업에 사용되는 핵심 품목이기 때문에, 미국 입장에서는 수출 확대가 ‘농업 안정’뿐 아니라 ‘산업 수출’과도 직결됩니다. 따라서 이번 요청은 단순히 농업 문제가 아닌, 미국의 산업적 이해관계가 결합된 전략적 통상 요구라 할 수 있습니다.
한국의 ‘검토 안 해’ 입장, 배경에는 농가와 시장 구조
한국 정부는 미국의 대두 관세 인하 요청에 대해 “현재 검토하고 있지 않다”며 명확한 선을 그었습니다. 이는 단순한 외교적 완곡 표현이 아니라, 국내 농산물 시장 안정과 농가 보호를 위한 현실적 판단입니다.
현재 한국의 대두 자급률은 약 20% 수준으로, 대부분의 식용 대두는 미국과 브라질에서 수입됩니다. 이미 미국산 대두는 기존 FTA 혜택으로 무관세 또는 저율 관세(3%)가 적용되고 있으며, 추가적인 관세 인하는 실익이 거의 없는 상황입니다. 즉, 미국의 요구는 실질적인 시장 개방보다는 ‘정치적 상징성’에 가깝습니다.
또한 한국 농민단체와 식품업계는 이번 미국의 요청에 대해 강한 반발을 보이고 있습니다. 국내산 콩 가격은 2024년 이상기후와 생산 감소로 이미 상승한 상태이며, 여기에 미국산 저가 콩이 대거 들어오면 국산 대두 산업 기반이 무너질 것이라는 우려가 큽니다. 농협경제연구소에 따르면, 미국산 대두가 관세 없이 들어올 경우 국내 콩 가격은 평균 15~20% 하락할 것으로 추정됩니다. 이는 단순한 가격 변동이 아니라 국내 콩 재배 면적 축소 및 농가 이탈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습니다.
한국 정부는 이러한 시장 구조를 감안해, “한·미 통상 협력은 유지하되, 농산물 분야는 예외로 한다”는 입장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산업통상자원부 관계자는 “미국의 요청은 이해하지만, 현재 국내 수요 구조와 농가 상황을 고려할 때 추가 관세 인하 논의는 없다”고 밝혔습니다.
또한 식품업계 입장에서도 미국산 대두 추가 수입은 실익이 크지 않습니다. 이미 대부분의 두부, 콩기름 업체는 브라질산 또는 캐나다산 GMO 대두를 장기 계약 형태로 수입 중입니다. 미국산을 늘려야 할 경제적 유인은 없다는 것이 업계의 판단입니다.
향후 협상 전망: ‘FTA 재협상’의 전초전?
전문가들은 이번 대두 협상이 한·미 FTA 재조정의 신호탄이 될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합니다. 미국은 IRA, 반도체법, 핵심광물 협정 등 다양한 분야에서 한국과 협력을 강화하는 동시에, 농산물·축산물 분야에서의 상호 시장 개방 압박을 병행하는 전략을 취하고 있습니다. 이는 2008년 FTA 체결 당시 ‘쇠고기 개방’ 논란과 유사한 양상으로, 향후 한·미 통상 관계의 새로운 뇌관으로 부상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한국 정부는 이번 협상을 ‘경제 논리보다 외교적 압박에 가까운 요구’로 판단하고 있으며, 미국의 정치 일정(2026년 중간선거)을 고려하면 당분간 유사한 요구가 반복될 가능성이 큽니다. 미국 농업 로비단체들은 한국, 일본, 유럽을 주요 ‘보조 수요 시장’으로 삼고 있어, 향후 옥수수·밀·유제품 등으로 논의가 확대될 수도 있습니다.
다만, 한국 입장에서도 완전한 거부보다는 ‘부분적 유연성’이 필요하다는 시각도 있습니다. 대두 외에도 바이오 연료, 식용유 원료 등으로 미국산 대두를 전략적 수입 자원으로 활용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 경우, 정부는 “농산물 전면 개방이 아닌, 산업용 한정 저율관세” 형태의 절충안을 검토할 가능성도 있습니다.
결국 이번 사안은 단순한 콩 수입 문제가 아니라, 한국의 식량 자급 전략과 통상 주권을 둘러싼 문제로 귀결됩니다. 농업 전문가들은 “단기적으로는 미국의 요구를 거절하더라도, 장기적으로는 안정적 공급망을 고려해 미국산 대두의 전략적 활용 방안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합니다.
‘미국의 콩 요청’은 단순한 농산물 거래 이슈가 아니라, 경제 안보와 외교 협상의 교차점에 서 있는 사안입니다. 한국은 농업 보호와 식량 자급률 유지라는 현실적 과제를 안고 있고, 미국은 자국 농가를 위한 외교적 압박을 강화하고 있습니다. 향후 협상의 핵심은 “시장 개방”이 아니라 “균형 유지”에 있습니다. 즉, 한·미 양국이 서로의 산업과 안보 이익을 존중하면서, 실질적 협력 관계를 이어갈 수 있는 전략적 균형점을 찾는 것이 중요합니다.